JINSEON  AHN

WORK     EXHIBITION     PROJECT     TEXT     CV      CONTACT


《Centurial Trio》
기획전 서문

2024 이아현 기획자

평범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내일

당신의 하루, 길게는 일주일을 복기해보자. 침대에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집 밖을 나서기 전까지, 누군가 의 도움으로 단정하게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가도 비슷한 상황은 반복된다. 당신이 서 있는 그 길은 크고 작은 손길을 거쳐 안전하고 깨끗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귀가해 잠들기 전까지 당신 의 세상은 한 명의 돌봄으로만 온전하지 않다. 오늘도 세상은 이들의 희생과 책임에 빚을 진다. 이들은 타인 을 돌볼 권리를 강요받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팬더믹으로 모두가 외출이 제한되면서, 한정된 공간에만 머물다 보니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 달았다. 매일매일 깨끗한 침대 위에서 기상하고 맛있는 밥을 먹고 집안일이 밀리지 않을 수 있는 건 모두 돌 봄 노동을 제공하는 존재 덕분이라는 것.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는 그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왜 희생하지 않고 행복을 얻을 수 없는가.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소수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보다 모두가 배분하 는 법이 더 민주적이지 않은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함’, ‘[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 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 정의된다. 돌봄 노동은 전자의 경우에 가깝지만, 단순히 일을 한다고 보기가 힘들다. 한 인간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동력을 제공하나 다수의 경우 반강제적으로 행하 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몫의 노동을 합쳐 한 사람이 지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시화되지 않고 몇 세기 동안 여러 사람이 해야 할 노동을 하루하루 해치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가꾸어낸 사회는 불편한 행복을 내재하며, 평범한 일상이란 사실 기울어진 원판 위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 짊어진 숙 제였다.

불평등한 안정 아래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전시는 랑시에르가 노동자는 생산하지 만, 사유할 수 없다는 불평등의 논리를 반박한 순간과 동행한다. 노동의 일상성과 예술의 예외성에 관한 문 제 제기에서 비롯해, 감성계의 분할을 통해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갖고 예술의 전위를 바탕으로 이를 가시화 하고자 한다. 김지윤은 파운드 오브제를 활용한 키네틱 장치와 조각을 통해 일상에서 조명되지 않은 것들의 감정을 풀어내고 있다. 그는 전시에서 평탄한 하루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적응 노동’의 이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고통과 통증을 마주하도록 한다. 안진선은 도시의 장소성에서 기인한 감정과 재료, 시점을 바 탕으로 조각과 설치를 제작한다. 그는 영주아파트를 탐색하고 전시 공간과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 공간에 남 겨진 흔적과 어우러지는 작업을 선보인다. 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적이 하나의 조각이 되어 두 작가의 작 업과 어떠한 선율을 만들어내는지 실험한다. 안초롱은 사진 이미지 과잉 시대에서 전문가의 사진과 아마추 어의 사진 경계의 모호함에 대해서, 결국 무엇이 사진으로 남을 수 있는지 질문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할머 니를 병간호했던 시간을 기록한 휴대폰 사진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준다. 가족이라서 마음이 복잡했던 시간 을 프레임에 담는다.

세 작가가 조합한 음악은 집에서 시작되나 이곳에서만 들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돌봄이 필요한 모든 환경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나아가고자 한다. 나아가 이 음악은 익숙한 공간을 전 유하여 쓰는 또 다른 역사다. 그 이야기에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는 도구가 등장할 것이며(김지윤), 과거의 흔적을 발굴하고 보존하며(안진선), 그 옆에서 삶을 목격하는 이(안초롱)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완성된 이야기의 끝에는 한 세기가 넘도록 연주될 선율만 남아있기를 바란다.